살며 사랑하며

수원 화성에서

꿈꾸는 식물 2009. 1. 5. 19:20

  말로만 듣던 수원 행궁과 화성 일대를 주말을 이용하여 남편과 걸었다.  그 유명했다는 '대장금'을 한 회도 보지 못한 나로서는 '대장금'에 대한 일본 관광객들의 관심이 낯설었다.  차라리 어설프게 재연한 '화성행행도 팔첩병'이 마음에 젖어든다.  수원 행궁에서 스쳐 지나간 영조와 정조,   사도 세자와 정조,  혜경궁 홍씨와 정조에 관한 생각으로 마음이 서늘해진다.

 

  아버지를 뒤주에 넣어 살해한 할아버지,  지아비를  살해하는데 기꺼이 동의한 어머니,  세자를 살해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섰던 그 많은 조정의 관료들!  정조는 그 마음의 감옥을 어떻게 견뎌내고,  그 감옥에서 어떻게 나올 수 있었을까?  아버지의 능소로 갈 때는 더뎌서 마음 아프고, 돌아올 때는 두고오는 아버지가 안타까워 마음 아픈 정조의 마음이 그 세월을 뛰어서 내 마음에 전해진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깊을수록 마음의 감옥은 깊어지기만 했을 텐데......  사약을 받은 어머니의 영혼에 사로잡혀 자신을 망치고 백성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연산군은 그 마음의 감옥에서 끝내 나오지 못했다.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헨리 8세의 두 번재 아내인 어머니 앤 볼린이 만든 마음의 감옥의 그 깊은 해자를 뛰어넘어 엘리자베스 1세는 위대한 여왕으로 자신을 우뚝 세웠다.  물론 정조 역시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찬란한 르네상스를 이룬 강건한 군주였다.    

 

  똑같은 고통 앞에서 다양하게 반응하는 역사 속의 인물들을 보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너는 네 운명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는가?'  '너는 주어진 네 앞의 생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자기 앞의 생이라며 독립된 존재로 놓이길 늘 원했지만,  나는 내 삶에 비겁하고 뒷걸음만 치는 겁쟁이였다.  아, 이제는 내 앞의 생에 당당한 내가 되고 싶다.  내 스스로 깊게 판 해자를 메우고 성 밖으로 나와, 신이 나에게는 늘 신 레몬만을 던져 준다며 불만을 터뜨린 내 삶과 마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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