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붉은 동백꽃

꿈꾸는 식물 2009. 1. 1. 00:23

  올해도 베란다 화분에서 동백이 피어난다.  일주일에 한 번 물을 주면서 마음 쓰지 않은 척 애써 외면하는데도 마음이 늘 쓰이는 붉은 동백이 올해도 또 피어 났다.

 

    옛날에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꽃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아버지의 나무람에도 불구하고 시청 뜰에 피어있는 동백 한 가지를 기꺼이 꺾었습니다.  어머니가 소망하던 그 동백은 붉고 노란 꽃술을 가진 아름다운 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동백을 뜰에 심었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동백은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그 한 가지가 그 아이 누나네 집에까지 와서 해마다 노란 꽃술와 붉은 꽃으로 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지금은 없습니다.

  엤옛날에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골프 치는 아버지가 다른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조그마한 양주병을 넣고 다니는 가방을 부러워 하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도망자 신분임에도 그 아이는 그 가방을 인터넷 쇼핑몰에서 발견하고 아버지를 위해 보내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지금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옛날에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두 살 터울인 형과 모든 형제가 그렇듯이 몸싸움을 즐겼습니다. 여형제 많은 남동생들이 그렇듯이 싸움도 계집애들처럼 하였습니다. 내일 모레면 쉰을 바라보는 형의 얼굴에는 그 아이가 긁어 놓은 손톱 자국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지금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그래서 어느 곳에나 있습니다.

 

  아무 곳에도 없지만 어느 곳에나 있는 그를, 그의 사진을 오랜만에 보았다.  너무 푸르른 모습이 낯설어 심하게 낯가림하다가 급기야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멀어져만 가는 그를 나는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고 있다.  그의 이름은 김훈이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난지 이제 겨우  5년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를 잃기 전에 그를 잊어 버렸다.  그래서 남아 있는 우리 모두는 죄인이다.

 

 

 

 

 

 

    

           

'살며 사랑하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피어 있다  (0) 2009.01.09
수원 화성에서  (0) 2009.01.05
허둥허둥 '쌍화점' 감상  (0) 2009.01.02
내변산에서  (0) 2008.12.29
슬픈 다짐   (0) 2008.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