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머핀님이 광청 종주를 해서 수원의 그 유명한 왕갈비를 먹고 그 날은 수원 친정에서 1박 하고, 그 다음 날 다시 광청 종주를 하자고 이야기 했다. 그 뒤에 등산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시동생이 한 번의 실패를 딛고 청광 종주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 블로그며 카페를 뒤져야만 했다. 청광 종주란 청계산에서 광교산으로 이어지는 수원에서 의왕 수지 서울을 잇는 다섯 개 연계 산행을 말한다. 다섯 산은 청계산, 우단산, 바리산, 백운산, 광교산이다. 옛날에 머핀님과 걸었던 서울 동남부 연계 산행, 서초 알프스, 광명 알프스처럼 서울 서남부 산꾼들에게는 많이 알려진 종주로, 지리산 화대종주라는 수능을 앞두고 모의고사처럼 치르는 종주였다. 거리도 제각각이고 물론 종주 시간도 제각각이지만 종주를 끝낸 분들의 자부심은 모두 함께 대단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종주하신 산꾼, 여럿이 종주를 하다가 도중에 하차하신 산꾼, 끝내 실패하여 미완으로 남겨 두신 산꾼, 여름날 스콜처럼 기습적으로 내린 소나기와 함께 걸으신 산꾼, 겨울날 아이젠을 신고 걸으신 산꾼......
드디어 나도 청계종주에 나선다. 주선씨는 속초로 골프여행을 떠났고, 아들 승민은 여전히 도서관행인 14일부터 시작하는 3연휴에 청광종주를 해 보리라 뜻을 세우고 삼목회 도반들을 부축였다. 머핀님은 가게는 자유로운데 눈병이 심하고 남편 생일이란다. 미자씨는 겨운씨가 휴가여서 가게에 묶여 있는 주말이란다. 한번도 간 적이 없는 산을 연계산행할 자신이 없어 마음을 접고 어제는 영화관에서 종일 영화 세 편을 연속 상영했다. 문득 밤에 떠오르는 생각 하나, 멀고 먼 나라도 말이 통하지 않는 곳도 아니고 까막눈이도 아닌데 못 갈 것은 없다는 깨달음이 벼락처럼 왔다. 일찍 일어나 수원으로 이동하여 낯선 광교산부터 시도하면 근처 주말 산꾼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청계산은 내가 잘 아는 산이고 시도 때도 없이 동네 산꾼들이 많이 찾으니 늦어도 걱정이 없고 혹 힘에 부치면 옛골이나 청계골 아니면 원터골로 하산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 섰다. 나의 영특한 머리에 축복을!
5시 40분 알람이 울리는데 망설이고 주저하다가 7시 30분에 강변역에서 출발 수원역에 8시 46분에 도착, 눈 앞에서 11번 버스 놓치고 9시가 넘어 그 다음 버스에 올라 결국 9시 22분부터 대망의 광청종주를 시작한다. 알고 보니 내가 보낸 13번 버스 역시 광교산행 버스였다. 무지는 어떤 경우에도 죄악이며 옆에 사람들에게 묻지 않고 고집스럽게 11번 버스만 기다린 융통성이 없는 나에게 '입이 보배'라는 속담은 유효하다. 그 유명한 반딧불이 화장실은 공사 중이고 심지어 석기봉 화장실까지 공사 중이었다. 워낙 땀을 많이 흘렸고 무맥주 산행이었던 것이 불행 중 다행이다.
광교공원 - 백운산( 형제봉, 시루봉, 백운산 정상) : 9km, 2시간
백운산 - 하오고개 ( 백운산 정상, 바라산, 우담산, 하오고개 ) : 7km, 1시간 30분 ( 16km, 3시간 30분 )
하오고개 - 화물터미널 ( 국사봉, 이수봉, 석기봉, 망경대, 매봉, 옥녀봉 ) ; 17km, 3시간 30분 (알바 거리 3km 40분 )
전체 거리 : 33km(알바 거리 : 3km ) 전체 시간 : 7시간 (알바 시간 : 40분)
광교공원에서 시작하는 광교산 형제봉과 시루봉은 북한산 둘레길 아니면 서울 둘레길처럼 편안하고 친근하고 부드럽고 정답기까지 했다. 대부분 등산로에는 가마니 메트가 깔려 있고, 목재 데크로 정비를 했고, 곳곳에 휴식을 위한 의자가 있다. 평지는 가볍게 뛰고 약간의 오르막은 걷는 형태로 앞으로 나갔다. 광교산을 사랑하는 수원 시민들이 모두 광교산으로 출동한 듯 산은 형제봉까지 인산인해를 이룬다. 광교산 시루봉으로 이어지는 길부터 주말 산꾼들의 숫자는 줄고 백운산 방향은 조금은 한적하다. 오만한 나는 가비얍게 샤방샤방 전반부를 뛰어 나녔다.
조금도 쉬지도 않고 조금도 마시지도 않고 내가 절반이라 잡아 놓은 바라산을 지나 우담산까지. 백운산에서 바라산, 이어지는 우담산까지는 인적이 드물었다. 청광종주를 하시는 산꾼들만 가뿐 숨을 몰아쉬며 오르고 있을 뿐,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산꾼들은 뒷모습과 베낭까지 익숙할 정도이다. 고즈넉한 숲길이 계속 이어진다. 군사 시설을 돌아 돌아서 어렵게 종주길을 만들어 놓은 듯 등산로의 폭은 좁고 산꾼의 자취는 드물고 풀벌레 소리만이 온 숲에 가득하다. 바라산에서 우담산으로 이어지는 그 악명 높은 365계단을 여유만만 내려오며 24절기를 디카에 담았다. 광청종주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구간이 백운산, 바리산, 우담산의 중반부이다. 전형적인 여름 숲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그 숲을 떠올리는 지금도 행복하다. 아직도 남아 있는 칡꽃의 향기, 끝없는 울음으로 가을을 부르는 풀벌레 소리, 이름 모를 꽃과 녹음빛 풀이 만들어내는 한여름 내음, 아직도 여름임을 증명하고자 온 몽으로 울어대는 매미 울음 소리. 하오고개에 이르는 3시간 30분 동안 17km를 걸었다.
하오고개를 찍으며 악몽은 시작됐다. 우담산에서 여유있게 물을 마시고 대추방울 몇 알까지 먹으며 체력을 보충했다고 생각했는데 완전 오판이었다. 대단한 오르막도 아닌데 쉽게 오를 수 없어 계속 쉬면서 기진맥진 엉금엉금 오른다. 하오고개에서 국사봉으로 이어지는 1.7km를 30분에 걸쳐 유체이탈 상태로 걸었다. 계속 쉬고 또 쉬며 물을 마셨지만 바닥으로 떨어진 체력은 쉽게 회복이 되지 않고 급기야 많이 걸을 때 내 몸의 신호인 골반까지 아프기 시작한다. 더 큰 비극은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 비몽사몽 국사봉에 올라 청광종주를 하시는 산꾼들과 몇 마디 나누다가 표지를 확인하지 않고 길을 잡았다. 광청종주 때 제일 힘든 부분이 하오고개에서 국사봉 구간이었다는 다른 산꾼의 경험에 고무되어, 계속 이어지는 숲길인 내리막에 엄청 행복해서 이수봉에서 오는 산꾼이 전혀 없어 약간 불안하기는 했지만 뛰어뛰어서 1.5km 정도 하산하고 말았다. 다시 1.5km를 올라올라 국사봉까지 가는 길이 멀고 멀어서 나의 부주의와 시건방과 선입견과 오만에 정말 울고 싶었다. 다시 국사봉에 올라 국사봉을 안고 도는 표지판을 확인하고 이수봉으로 향한다. 직진 본능과 수직 본능을 가진 나에게 "나쁜 습관은 가장 큰 적이다"는 말은 늘 유효하다.전반부와 중반부는 초행길이어 표지 확인하고 주변 산꾼들에게 묻고 또 물었는데, 국사봉에서 이수봉 길은 초행임에도 많이 다닌 청계산이라는 이유로 표지 확인도 하지 않고 산꾼들에게 묻지도 않았으니 3km 40분 알바는 자업자득이다. 이수봉 지나 석기봉 오르는 늘상 다녔던 길도 오늘은 나를 압박한다. 우리 삼목회 도반들이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자꾸만 미안해진다. 사악한 지도자 동무(?)를 만나 목요일마다 고생하는 머핀님과 미자씨를 생각하며 땀을 눈물처럼 쏟았다. 석기봉 화장실과 헬기장 공사로 변경된 등산로를 따라 망경대에 찍고 매봉으로 나간다. 결국 매봉에서 비비빅 아이스바를 샀다. 계속 물만 마셔 난생 처음 산행 도중 1000cc 물을 다 헤치웠다. 혈당량이 떨어져 대추 방울이보다 달콤하고 시원한 비비빅이 좋을 듯해서 뽀빠이 시금치처럼 약처럼 먹었다. 갑자기 아픈 곳도 없이 맥을 놓아버리는 엄마를 위한 아빠의 특효약이 비비빅인데, 별 것을 다 닮는다고 혼자 웃었다. 비비빅 덕분에 매봉에서 매바위를 지나 옥녀봉까지 편안하게 걸었다. 옥녀봉 역시 전망대 공사 중이다. 옥녀봉에서 화물 터미널까지 내리막을 달리다시피 빠른 걸음으로 마무리한다.
광청 결의를 잊지 말자고 또 다짐한다. 1)주변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어린양 아니 늙은양 하지 않기. 2)맥주 줄이기. 3)절대로 점집 가지 않기. 4)비교해서 불행해지지 않기. 33km 걸으며 7시간 동안 다짐하고 맹세했으니 꼬옥 지켜내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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