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어지러운 날은 혼자 걷기에 나선다. 지난 주 토요일 홀연히 시작된 이런 저런 일로 내 마음이 갈 길을 잃어 어지럽다. 친구와 수다를 한바탕 늘어 놓아도 엄마와 한바탕 뒷담화를 펼쳐 놓아도 뒷맛은 씁쓸하고 영 개운하지 않다. 이럴 때 특효약은 넋을 잃고 걷는 것이다. 주선씨는 후배들이랑 운동 가고, 아들은 토요일 근무여서 집에는 오롯이 나 혼자 남겨졌는데 끝없이 게으름을 피우다가 10시가 훨씬 지난 시간에 베낭 메고 집을 나선다. 베낭 속에 따뜻한 커피 한 잔 넣고 시청역에서 남대문을 향하여 11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떠난다.
올해 들어 처음 서울 성곽 걷기에 나서니 게으름과의 동거도 이제 습관이 되어 버렸나 보다. 시청역 8번 출구에서 남대문 향하여 출발하여 남산 거쳐 광희문 지나 동대문을 지난다. 성곽의 s라인이 제일 아름다운 낙산을 지나며 먹구름을 잔뜩 머리에 이고 있는 북한산의 연봉들을 바라보며 혜화문으로 접근하여 와룡공원 거쳐 북악산의 숙정문과 창의문을 찍는다. 결국 부암동 동네 마트에서 클라우드 한 켄으로 허기와 갈증을 달래고 인왕산을 향한다. 안산과 선바위를 바라보며 인왕산 거쳐 서대문터와 서소문터를 거쳐 다시 남대문으로 회귀한다.
굵은 땀방울을 마구 뿌리며 걸음을 멈추지 않고 쉬임없이 직진본능과 수직본능으로 달려 달린다. 어지럽던 생각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머리가 맑게 정화되는 기분이 들 때 걷기가 끝이 났다. 섭섭하고 야속한 마음, 늘 나만 손해보는 것만 같은 피해 의식, 모든 인간 관계에서 나만 늘 '을'인 것만 같은 모멸감, 근거 없고 대책 없는 쓸쓸하고 외로운 마음까지 굵은 땀방울에 쏟아 버렸다. 그리고 씩씩하고 용감하고 담대하게 내 삶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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