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아들이 고등학교 때였던가 수학 과외 선생님이 오셔서 집을 비유고 가평 축령산 휴양림에 가볍게 갔다가 떠들어대는 아이들을 피해 잠깐 축령산에 오른 기억이 있다.
나는 수리바위 능선 전 암벽약수 근처라고 생각하는데 주선씨는 수리바위까지 찍고 내려 왔다고 생각헤서 합일점을 찾지는 못했다.
금요일 밤에 서리산에 산철쭉 보러 가자고 이야기 하기에 목요일과 금요일 이틀을 뛰었기 때문에 과연 일어날까 믿기지 않았는데 출근하는 날처럼 6시에 일어나 샤워를 하며 준비를 하는 주선씨 덕분에 9시에 축령산 휴양림에 주차를 하고 축령산을 오를 수 있었다.
축령산에서 서리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흐느적거리며 사방사방 걸었다. (5월 10일 토요일, 5시간 30분 11km)
우리가 축령산에 나섰으니 주말 산꾼들이 대부분 축령산에 들어온 듯 9시인데도 산악회 단체 주말 산꾼들이 온 산에 가득하다.
모두들 고아 출신이지 '오빠'와 '언니'를 부르며 이산 가족 상봉장이 되어 버린 주차장 입구부터 산악회에 끼어 함께 걸어 가야만 했는데, 그 덕분에 길을 잘못 들어 친구 따라 강남 가는 바람에 가볍게 알바를 하고 관리사무실 옆 제2주차장에서 축령산 코스로 제대로 접어 든다.
산악회 사이에 끼지 않으려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앞질러 걷다가 주선씨를 기다리면 주선씨는 산악회 회원인 양 '오빠'와 '언니'의 향연 속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에 취해 산악회 회원들과 더불어 다가온다.
1km를 단위로 끊어 수리비위 능선에서, 수리바위에서, 능선 삼거리에서, 남이바위에서 하염없이 망부석이 되어 주선씨를 기다리고 기다린다.
삼목회를 하면서 기다리는데는 이력이 생겨 잘 기다리는데 1km를 걸으며 20분 이상 기다리는 것은 조금은 문제가 있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그냥 기다릴 수밖에.
끝없이 이어지는 가평의 산봉우리를 바라보고, 파르르 떨리는 연두빛에 마음을 주기도 하고, 수리바위와 남이바위에서 붙박이로 있으며 사진을 찍어 주기도 하고 찍히기도 하고, 드문드문 보이는 연분홍빛 우아한 산철쭉에 눈과 마음을 주기도 하면서 주선씨를 기다린다.
'산에 오른다는 것은 높이와의 싸움이 아니라 무게와의 싸움이다'는 광고 카피가 진실이 된다, 산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자신의 몸무게이다'는 어던 길동무의 하소연이 진실이 된다, 산에서는.
헬기장까지 제대로 따라오던 주선씨가 뒤에 오는 산악회 멤버들의 쪽수에 밀려 축령산 정상으로 오지 않고 더불어 하산길로 접어들어 알바를 또 한바탕 하셨다.
아침을 제대로 먹지 않아 등기죽이 배에 딱 붙어 버린 것 같은데 서리산에 오를 자신이 없다고 가볍게 시장기만 달래란다.
축령산 정상에서 조금 내려와서 김밥 몇 조각을 먹고 절골로 향한다.
886m 축령산에서 제법 아래로 아래로 내려 오며 부드러운 능선이 물결치듯 흐르며 연두빛과 초록빛 색채의 향연 속으로 이어진다.
누가 흙산을 육산이라 했던가?
며칠 전 내린 비 덕분에 흙먼지 하나 날리지 않는 부드러운 흙길을 춤추듯 걸어간다.
축령산 정상부터 잔디광장으로 이어지는 절골, 헬기장, 억새밭, 서리산 정상 부근까지 산 전체가 온통 반찬 냄새와 막걸리 냄새가 진동한다.
혹 주선씨가 서리산을 포기할까 걱정되어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서리산 정상까지 내달린다.
산악회 여러분들이 오기 전이어서 여유있게 사진도 찍고, '오빠'와 '언니'를 부도수표처럼 난발하는 사람들 구경도 하고, 분홍빛이 거의 보이지 않는 철쭉동산을 바라보기도 하면서 주선씨를 기다리는데,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땅 걷기의 야학(들두루미)님을 또 우연히 만났다.
지리산 장터목 대피소에서, 북한산 대성문 앞에서, 그리고 서리산 정상에서 이렇게 우연히 세 번씩이나 만났으니 반가움과 정겨움이 일렁인다.
정말 다음에 만나면 술 한잔 나누자며 악수를 하고 그렇게 헤어진다.
서리산 정상 근처에서 우리도 남은 김밥에 믹걸리를 나눠 마시고, 가져온 과일까지 깨끗하게 먹어 치웠다.
이제 철쭉동산에서 화채봉을 지나 하산길이다.
날씨가 갑자기 더워졌다가 추워지고 또 더워졌다가 추워지는 온탕과 냉탕을 반복하는 수능 출제를 닮는 바람에, 성질 급한 녀석들은 빨리 피었다가 시들고, 제대로 피는 녀석들은 이제 꽃망울을 매달고 있단다, 철쭉동산의 아이스케키 파는 아저씨의 말씀.
날씨가 지금처럼 따뜻하면 다음 주말에 못다 핀 녀석들이 제대로 피어나면 철쭉동산에서 한반도 지도를 볼 수 있을 것이란다.
아쉽지만 내려 오면서 드문드문 피어있는 연식을 자랑하는 산철쭉 송이송이를 디카와 폰 카메라에 저장한다,
양쪽으로 줄지어 도열한 연륜을 엿볼 수 있는 산철쭉 군락을 바라보며 연분홍 산철쭉이 활짝 피어나 우아한 아름다움을 자랑했을 풍광을 떠올려 본다.
어찌 첫 술에 배 부르랴, 다음을 또 기약할 수밖에.
축령산 코스는 수리바위와 남이바위 같은 기암 절벽이 자리 잡아 등산하는 기쁨이 있고, 멀리 북한강의 강줄기까지 마음에 닿고, 서리산과 이어지는 능선은 부드러운 흙길이 물결치듯 흐르고 흐르다가 다시 위로 오르는 리듬을 느낄 수 있고, 서리산 코스는 연륜을 자랑하는 산철쭉을 사이에 두고 걷다가 축축 늘어지는 잣나무 사이를 걸어가는 기쁨이 기다리고 있다.
등산을 즐기지 않는데도 굳이 시간을 내서 축령산까지 함께 산행에 나선 주선씨가 고맙고 고맙다.
편의점에서 주선씨는 설레임을, 나는 옥동자를 하나씩 입에 물고 아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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