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주말 여행으로 안면도에 다녀 오다. 아들 시험 때문에 안면도 걷기에 참석 못했다며 징징거린 내가 마음에 걸려서일까? 생각지도 못한 주말 여행이었다. 도반이며 촛불인 그대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겠다며 인터넷 검색도 없이 맨주먹으로 따라 나선다. 남편이 좋은 가장 큰 이유는 믿고 찌댈 언덕이기 때문이다.
봄을 부르는 바다를 옆에 두고 하얀 모래밭을 걷고 또 걷는다. 길이 없어 열심히 걷다가 다시 돌아 나온 방포해수욕장 끝의 자갈밭은 자꾸 발이 중심을 잡지 못해 힘이 들었다. 자갈과 바위가 험한 그 곳에서 치성을 드리는 무속인을 보았다. 바다를 향해 촛불까지 켜고 신을 위한 젯상을 차려 놓고 의뢰인과 더불어 치성을 드리고 있었다.
"걱정 하지 마라. 걱정 하지 마라!"
꼭 나를 위로하는 말만 같다. 상처 준 사람도 없는데 혼자 상처 받아 상처난 내 마음을 위로하며 다독여 주는 것만 같다.
"걱정 하지 마라. 걱정 하지 마라!"
안면도는 여러 번이다. 남편이랑 바닷 바람 맞으며 하은수산 옆 승민수산에서 조개구이에 소주를 마셨던 일, 바닷가 이층 횟집에서 회를 먹고 해넘이를 악착같이 기다려 보았던 일, 파도까지 얼어버린 일월 어느 날 그 엄청난 추위 속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와인을 마셨던 가족 모임. 가장 잊을 수 없는 안면도행은 짝사랑의 아픔으로 힘들어 하던 아들에게 해넘이를 보여 주려고 무리해서 차를 달려 왔던 2002년 겨울이다. 구름 때문에 낙조는 보지도 못하고 영문 모르는 남편은 차 안에 두고 아들과 둘이서 꽃지 해안을 걸었다. 아들은 첫사랑의 열병 때문에 질풍노도의 시절을 지나고 있었다. 감정의 기복이 심했던 아들 때문에 온통 신경을 쓰느라 그 때부터 내 동생 훈이에게 마음이 떠났었다. 그 전에 안면도를 찾았을 때는 남편이 화장실에 간 틈을 이용해 꽃지 해안의 공중 전화에서 훈이에게 같이 바다를 보고 싶다고 전화를 걸기도 했었다. 어쩌면 훈이가 떠나기 전에 나는 훈이를 먼저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훈이가 우리를 떠나기 전에 나는 훈이를 보냈다. 지금은 하은수산도 승민수산도 없고 유진수산만이 백사장 해변에 남아 있다. 물론 아들 녀석은 짝사랑의 열병을 당연히 졸업했다. 그리고 훈이는 아무 곳에도 없다. 그래서 훈이는 모든 곳에 있다.
'걸으면서 쫓아버릴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생각이란 하나도 없다'고 키에르케고르가 말했다던가? 마음이 복잡하고 어수선하면 걷기 시작한다. 내 마음을 도저히 달랠 길이 없어 무작정 걷고 또 걷는다. 10km정도를 걸으면 내 마음은 고요해지고 잔잔해지는 듯, 내 상처와 슬픔과 화해를 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쫓아버린 무거운 생각 대신 다른 무거운 생각이 또 내 마음에 들어 온다. 그래서 나는 또 걸어야만 한다. 파도가 모래에 흔적을 남기듯, 바람이 강물에 흔적을 남기듯, 지금의 걷기가 내 마음에 흔적을 남기리라. 남편과 나는 동행인 듯 아닌듯 걷고 또 걷는다. 별다른 이야기도 없이 각자의 생각에 빠지며 걷는다. 내 생각을 남편이 알 수 없듯이, 남편의 생각을 내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같은 곳을 바라본다. '사랑이란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나란히 앉아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면, 우리에게 아직 사랑은 유효하다.
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