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또 걷기

감악산 산행

꿈꾸는 식물 2009. 3. 16. 20:48

  경기 오악의 하나라는 감악산에 다녀오다.  오악은 북악산, 관악산, 송악산, 심악산, 감악산을 말한다고 한다. 100명산 수첩에서 추천하는 산은 실망 시키지 않는다.  천마산도 뜻밖에 아지자기해서 정겨웠는데, 감악산 역시 뜻밖에 신령스런 귀기가 느껴져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정상에서 마주한 아무 비문이 없는 몰자비(沒字碑)가 마음에 닿는다.  누군가는 당의 장수 설인귀비라 하고, 누군가는 또 다른 진흥왕 순수비라 한다는데......  우리네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는 아직 비문을 다 쓰지 못한 자신의 묘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은 묘비명을 만드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나는 글자가 세겨지지 않는 내 묘비에 무엇을 세겨 두기 위하여 오늘을 사는 것일까. 그 몰자비를 보며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고 성찰해 보라고 옛 선인들이 말을 건낸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그럴 줄 알았다'는  독설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을 떠올린다.  묘비명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내년이면 여든 줄에 접어드는 아빠를 생각한다.  아무런 글자도 없는 빗돌대왕비가 알지 못하는 한문이 잔뜩 쓰여진 비석보다 더 많은 것을 생각 키운다.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비(碑)ㅅ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하던

화련한 나의 사랑이라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함형수 님-

 

 

 

 

 

 

 

 

 

 

 

 

 

 

 

 

 

 

 

 

 

  칼바람이 드세다.  겨울을 마지막으로 느끼는 산행이리라.  바람에 막걸리병이며 안주로 가져온 김치통이 날아 다닌다.  눈을 감고 바람 소리에 귀기울여 본다.  계곡을 스치는 소리,  솔잎을 스치는 소리,  나직하게 들리는 대포소리,  정상에 살고 있는 까마귀 울음 소리, 낮은 쪽에서 들리는 산비둘기 소리.  눈을 감으면 온갖 소리가 더 크게 다가온다.  눈을 뜨면 그 소리들은 한 걸음 멀어진다.  우리는 얼마나 감각이라는 미망에 휘둘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휘둘리고 있는 게 어찌 감각 뿐이겠는가?  나를 사로 잡고 있는 미망으로부터 이제는 놓여나고 싶다. 진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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