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또 걷기

개나리 나들이

꿈꾸는 식물 2009. 3. 27. 13:06

  안면도에서 돌아오는 길에 스치며 지나갔던 달맞이공원의 개나리가 계속 마음에 걸려 수업이 한가한 수요일 날을 잡았다.  요즘은 제법 똑똑해져서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남편과 같이 하지 않았던 길도 용감하게 나서곤 한다.  물론 진경이랑 동행해서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아들 녀석이 아프다며 진경이는 에미답게 방콕행을 선택했고,  나도 에미답게 그냥 바람 부는 거리로 혼자 나섰다.    '에미답게'에 밑줄 그은 내 마음의 경사를 알아줄 이 뉘 있을까?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개나리 동산을 지난다.  새삼 삼십 년 전 개나리 피었던 송광사의 봄이 떠오른다.  개나리와 벚꽃이 아름답던 송광사의 봄에서 우리는 얼마나 멀리 왔는가.  남편과 함께 한 신입생 MT에 내가 찍었던 남편의 사진 몇 장.  하얀 셔츠에 교련복 바지를 입고 쑥스러워 어쩔 줄 모르던 신입생이던 남편과, 세상 다 산 것처럼 냉소적이었던 그러나 자의식만은 빛났던 78학번 풋내기이던  나.  한 해 한 해 세월이 가며 우리는 오래된 가구처럼, 오래된 친구처럼, 익숙하고 편안하다.  그러나 가끔은 그 빛나던 설렘을 찾으러 떠나고 싶다.  간절한 바람과 끝없는 동경은 어디로 갔을까?  흘러간 시간과 놓쳐버린 기회,  쏘아버린 화살과 떠나보낸 사람......  모두 어디로 갔을까?  

 

 

 

 

 

 

 

 

 

 

 

 

 

 

 

 

 

 

 

 

 

 

  옥수동과 금호동은 늙은 새댁 시절 살았던 곳이다.  결혼해서 처음 둥지를 틀었던 곳이 옥수동 산동네였다.  유난히 가파른 계단이 많던 이 동네에서 임산부로 일 년을 지내고,  승민이를 낳았고,  승민이가 세 살 되던 해 봄까지 삼 년을 살았다.  가난했다기 보다는 빛나는 젊음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시범을 보인다며 김치를 직접 담가준 남편의 마음과 아장아장 걷던 승민이의 해맑은 미소는 지금까지도 내 마음을 안내하는 등대이다.  그 등대의 불빛으로 나는 이 삶을 견디며 이 삶과 화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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