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일기

북한산에서 북악산으로

꿈꾸는 식물 2013. 7. 28. 23:10

  지루한 장마 끝에 모처럼 날이 활짝 갰다.

날씨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하여 꽈배기쌍알 종주를 해볼까 생각했었는데 주선씨가 늦게 운동을 나가는 바람에 나도 늦어졌다.  

불광역에 도착한 시간이 11시 40분, 수향비 거쳐 형제봉 찍고 북악산 지나 와룡공원까지 혼자 걸었다.

5시간 동안 15km 걸어서 성대 후문에서 마을버스 타고 안국역으로 이동하여 하루를 마감한다.(7월 20일 토요일)

  아마 삼목회에서 미영이가 처음 오는 날 수향비를 걷고 처음 걸은 듯 수향비가 낯설다.

그때는 초봄이었고 지금은 여름이 한창이니 모든 것이 새롭다.

초록이 지칠 대로 지쳐서 녹음이 무르익은 등산로는 온통 녹음 세상이다.

수리봉 - 향로봉 - 비봉에 이어지는 등산로는 오랜만에 산에 나선 산꾼들로 나란히 줄을 지어 기차놀이를 하면서 걷는다.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온통 낮게 깔리고, 가끔씩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한들한들 건듯건듯 불어 땀을 식혀 주고, 그동안 장마비에 깨끗하게 씻기운 북한산 연봉들이 손에 잡힐듯 가깝게 다가온다.

북한산 모든 봉우리에는 산에 굶주린 산꾼들이 한 봉우리씩 차지하고 자리 잡고 있어서 녹음과 하얀 바위에 울긋불긋 등산복이 꽃처럼 아름답다.

앞에 가는 산꾼들의 모습이, 뒤 따르는 산님들의 모습이, 크고 작은 북한산 연봉에 앉아 있는 탐방객의 모습이 꽃보다 더 아름답다.

폭우에 시달려 온 바위들이 우르르 내 앞에 다가와 끝없이 펼쳐지고, 녹음은 이제 한여름의 절정을 향하여 치달려 가고, 모처럼 활짝 갠 서울 시내가 정겹다.

인왕산 서울 성곽이 흐르고, 탕춘대성의 성곽이 뚜렷하게 보이고, 조금 눈을 멀리 돌리면 한강이 흐르고, 남산과 관악산을 느낀다.

사모바위에서 대남문으로 이어지는 문수봉에서 내가 지나온 수향비를 바라보며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와 눈으로 인사를 한다.

대남문에는 가을의 전령사 고추잠자리가 무리 지어 가을을 향하여 날고 있다.

대남문에서 대성문으로 향하는 300m를 힘이 넘쳐서가 아니라 대성문이 녹음에 가려 보이지 않아 보국문까지 갔다가 다시 대성문으로 돌아온다.

결국 1km를 알바하는 어리석음을......     

대성문에서 형제봉으로 방향을 잡으며 나름 바짝 긴장을 한다.

몇 번을 시도했고 몇 번은 실패하고 몇 번은 성공했지만 늘 북한산에서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이 길은 놓칠까 긴장이 된다.

형제봉을 향하여 가는 길에 형제봉을 넘지 못한 구름이 가볍게 비를 뿌린다.

몇 몇 산꾼들은 비옷을 챙겨 입지만 지난 2주 삼목회에서 비옷을 종일 입고 우중 도보를 했던 나는 전혀 개의치 않고 마냥 용감하다.

형제봉 거쳐 드디어 북악으로 이어지는 길으로 접어 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길은 별로 알려지지 않아서 탐방객들이 많지 않았는데 길이 널리 알려져 산악회 몇 팀이 정자마다 떼를 지어 수다가 늘어지고 있다.

북악산에서 내가 두고 온 북한산의 수향비와 사모바위 문수봉 형제봉을 바라 본다.

북악산의 서울 성곽과 남산 타워를 바라보며 숙정문을 일별한다.

서울 성곽에는 연두빛 담쟁이가 줄지어 올라가고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피어난다.

숙정문에서 와룡공원을 지나 성대 후문으로 내려온다.

  늘 삼목회 도반들과 함께 걸어서 이제는 혼자 걷는 것이 낯설고 조금은 꾀가 난다.

하지만 언제나 혼자 걸을 수 있어야 한다.

여럿이 걸어서 행복하지만 혼자 걷는 것도 행복해야 한다.

여럿이 걸어서 즐겁지만 혼자 걷는 걷도 즐거워야 한다.

여럿이 걸어서 대화를 나누고 혼자 걸어서 내 내면과 만나야 한다.

투명한 영혼을 만날 수 있도록 걷고 또 걸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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