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목회

덕유산 종주(1)

꿈꾸는 식물 2013. 6. 19. 14:59

  기다리고 기다리던 덕유산 종주를 마침내 해내다.

전라북도에서 이십 년 가까이 살았지만 무주 구천동 몇 번 다녀 오고, 무주리조트 아들 데리고  스키 타러 다녀온 것을 빼면 덕유산다운 덕유산은 만나 보지 못 했다. 

언젠가 겨울 주선씨랑 곤도라를 타고 향적봉 대피소까지 눈이 푹푹 내리는 길을 걸었던 기억, 승민이랑 백련사까지 함께 걸었던 기억이 내가 기억하는 덕유산의 전부였다.

영각 탐방 지원 센터에서 상공 탐방 지원 센터까지 일반적인 덕유산 종주가 아닌 육십령에서 시작하여 상공 탐방 지원 센터까지 조금 긴 종주를 하였다.

 

 첫날 (6월 13일 목요일) : 육십령 휴게소 - 삿갓재골 대피소 ( 8시간 13분 13,07km)

 둘째날 (6월 14일 금요일) : 삿갓재골 대피소 - 상공 탐방 지원 센터 ( 8시간 50분  20.15km) 

 

  동서울터미널에서 함양행 7시 버스를 타고 10시 15분에 함양터미널 도착, 택시를 타고(30분 소요,38000원) 육십령 휴게소로 이동하였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함양 IC에서 콜택시를 부른다면 시간과 경비가 반 정도는 절약할 수 있으리라 생각 되었다.

육십령휴게소에서 모닝맥주를 한잔씩 마시고 11시에 산행을 시작하여 할미봉 - 서봉 - 남덕유 - 삿갓봉 거쳐 삿갓재 대피소에 7시에 도착하였다.

  덕유산은 전형적인 흙산 즉 육산으로 덕유의 부드러운 연봉을 따라 방향을 바꿔가며 안으로 안으로 파고드는 형태의 산행이 이어진다.

돌산 즉 골산인 북한산에 익숙해진 나에게는 큰 바위를 만나기가 어려운 덕유는 조금 낯선 모습으로 다가온다.

북한산, 관악산, 운악산 같은 '-악'자가 들어가는 골산에 대한 마음의 경사가 유난한 나에게는 온유한 곡선을 그리며 물결치듯이 이어지는 덕유는 또 다른 신선함이었다.

커다란 청계산의 느낌, 육산인 청계산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느낌이 덕유의 첫 인상이다.

주로 백두대간 종주꾼들이 이용하는 탐방로답게 온통 무사 종주 내지 대간 완주를 를 비는 리본 홍수이다.

탐방로는 국립공원답지 않게 인공이 덜 들어가서 아직 야생의 냄새가 있어 조금 거칠어 힘들지만 그 거침과 야생이 마음에 닿는다.

곳곳에 헬리콥터로 옮겨 놓은 철근 구조물과 목재데크들이 모두 작업이 끝나면 깔끔한 그러나 야생을 잃은 덕유로 재탄생하리라.

삿갓재로 향하는 탐방로는 우리 일행 넷과 백두대간 종주를 위해 길을 나선 산꾼 한 분 이렇게 다섯 명, 반대로 오시는 분은 부부 산꾼과 나홀로 산꾼 한 분 이렇게 세 분인데, 공사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우리 탐방객들보다 더 많다.

목재 데크를 만들지 않으면 자꾸 탐방로가 무너져서 관리가 어렵고, 등산로에 펜스를 치지 않으면 자꾸 등산로가 넓어져 식물들이 살 곳을 잃어가고, 목재 데크와 펜스가 싫은데 다른 방법이 없다니 마음이 답답하다.

이제는 휴머니즘 시대는 가고 생명 존중 시대가 도래했다는 산산님 말씀에 절대 공감하지만 '생명 존중 시대의 국립공원 관리'라는 화두 앞에 나는 허둥댄다.

전날까지 내린 비 덕분에 땅은 촉촉히 젖어 있어 마사토임에도 미끄럽지 않고, 습기를 잔뜩 머금은 공기 때문에 땀은 흐르지만 평균 기온이 조금 내려가 나름대로 축복 받은 날이다.

습기를 함박 머금은 구름이 서봉과 남덕유를 넘다가 물기가 무거워 그만 넘지 못하고 간헐적으로 비를 살짝 살짝 뿌려준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날씨보다 태양이 미친 듯이 타오르는 적도풍의 불볕더위를 좋아하지만 땀을 한사발씩 쏟아내는 길동무들을 위해서는 다행이다.

  할미봉부터 시작된 파리는 점점 개체수가 늘더니 서봉은 완전히 파리들 세상이다.

정상을 좋아하는 덕유산 파리들이 정상마다 자리를 잡고 있어 정상에서 찍은 사진에는 으레 파리떼들이 우정 출현한다.

특히 서봉의 파리떼들은 '붉은 두건 파리'라 부를 정도로 머리가 붉은 빛을 띠고 할미봉 파리와는 달리 길고 마른 파리로 자기네들이 벌인 양 꽃에 매달려 꿀을 먹고 있다.

서봉에서 간식을 먹으며 쉬려고 했던 우리는 히치콕의 영화를 연상 시키는 파리떼에 놀라 부랴부랴 아래로 대피해야만 했다.

생태계의 교란 내지는 생태계의 반란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연두로 줄기인 양 올라오다가 하얗게 피어나는 박새, 연두빛 잎인 양 둥글게 둥글게 원을 만들다가 하나 하나 돌려 가며 송이 송이 꽃으로 피어나는 산수국, 순박한 시골 처녀의 하얀 웃음을 떠올리게 하는 넉넉하고 푸짐한 함박꽃, 그리고 이름도 알지 못하는 우리가 부끄럽게 환하게 웃어 주는 하양 노랑 분홍 보랏빛 꽃들.  

모두 다 놓아 버린 홀가분함, 모두 다 잘 될 것 같다는 근거 없는 낙관, 모두 다 사랑이고 행복이라는 대책 없는 긍정 속에서 삿갓재의 밤은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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