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에 가려 하였는데, 오전에 비예보가 있어 결국 청계산으로 떠났다.
청계산은 육산이어서 얼음이 녹아 길이 많이 질척거리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잠시 아이젠을 들었다가 그동안 내린 봄을 부르는 비와 따뜻한 날씨 때문에 필요 없을 듯 하여 베낭에서 꺼내 놓았다.
아이젠 가져 오지 않는 대가를 톡톡히 치른 하루였다.
머핀님과 이미자씨, 그리고 나는 네 발 달린 짐승처럼 망경대 구간을 기어서 통과하였다.
'나는 사람이 아니무니이다.'
결국 5시간 25분 동안 12km를 걸어 과천 매봉에서 시작 양재 매봉 지나 원터골로 내려 왔다.(3월 7일 목요일)
과천 서울대공원역에서 9시에 만나 이미자씨를 기다리며 촉촉히 젖은 부드러운 공기에서 나른한 봄의 내음을 느껴 본다.
안개인지, 황사인지, 연무인지 자욱한 뭔가를 뚫고 길을 나선다.
몇 번씩이나 걸음한 고수답게 매봉 찍고, 청계사와 이수봉을 향하여 방향을 잡았다.
청계사와 이수봉으로 나뉘는 길에서 이수봉을 향하여 걷는다.
그 오르막이 제대로 정비되어 목재 데크와 의자가 놓여 조금은 편안하다.
평소에는 산꾼들이 많이 다니는 길인데, 새벽에 내린 비 때문인지, 아니면 남녘의 꽃소식 때문에 멀리 봄맞이를 가셨는지 온 산이 우리 차지다.
머핀님의 우정 어린 여러 가지 격려와 충고, 이미자씨의 재치 넘치는 재기발랄한 이야기를 들으며 이수봉과 망경대로 나뉘는 삼거리까지 왔다.
주말이면 막걸리 파는 아저씨 영업장을 점령하고 맥주를 나눈다.
망경대를 향하여 온통 진흙 투성이의 길을 조심조심 고난의 행진을 시작했다.
석기봉 화장실 거쳐 망경대로 향하는데 표지로 망경대를 알 뿐, 청계산의 연봉들은 모두 안개 속에 잠겨 보이지 않고, 석기봉의 송신탑도 보이지 않는다.
망경대에 접어 들면서 아이젠이 없는 준비성이 없는 엉터리 산꾼인 우리는 네 발로 엉금엉금 기어서 망경대를 안고 돌았다.
망경대를 안고 돌아서 오른쪽으로 가야 하는데, 잠깐 망설이다가 푸른 빛 리본에 빠져 왼쪽으로 돌아 다시 과천으로 가는 망경대 아랫길로 접어 들었다.
친철한 어느 산꾼을 만나 1km 정도 알바를 하고 다시 돌아와 양재 매봉을 향하여 엉금엉금 기었다.
머핀님을 앞에 세우려고 하지 않았는데 본의 아니게 또 머핀님을 앞에 세웠는데, 잠깐 얼음에서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망경대를 안고 가는 등산로는 망경대 가까이 위쪽길과 망경대 아래로 아래쪽 길, 두 길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 했다.
언젠가 이수회 등반 때 주선씨와 망경대에서 길이 어긋나서 나는 위쪽에서 오지 않는 주선씨를 기다리며 투덜거리고, 주선씨는 아래쪽으로 가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린 나를 비난했다.
혼자 청계산 종주를 한 어느 가을날 분명히 망경대를 안고 돌았는데 완전히 망경대 뒤쪽 과천 방향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 얼마나 난감했는지.....
그 모든 수수께끼가 풀렸다.
주선씨는 아래로 나는 위로 갔으니 길이 어긋났고, 오늘처럼 망경대 윗길을 걸어 아랫길로 내려와서 왼쪽으로 계속 돌았으니 망경대 뒤편 한문이 새겨진 바위 앞에서 과천을 향하여 서있을 수밖에.....
일사천리로 매봉을 향하여 옛골을 지나쳐 간다.
매봉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따뜻한 봄날의 산행을 즐긴다.
이제 안개도 사라지고 날은 완전히 깨어나고, 대한민국 산악 패션 일번지답게 온갖 화려한 등산복으로 무장한 등산객을 만난다.
청계골 지나 원터골을 향하여 옥녀봉으로 향하는데, 머핀님이 내일 강화를 위해 그만 접자고 하신다.
옥녀봉으로 향하는 원터골과 마지막 갈림길에서 원터골로 내려 왔다.
이미자씨가 사주신 보쌈으로 뒤풀이를 하고, 굴다리 통과하여 왼쪽으로 잠깐 걸으니 신분당선 청계산역이다.
빛의 속도로 집으로 돌아왔다.
더욱 열심히 산행을 하여 5월 지리산 종주의 체력을 길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