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땅 소모임

숭례문에서 숭례문으로

꿈꾸는 식물 2012. 9. 19. 15:19

  머핀님과 1박 2일 각각 집에서 숙박하는 합숙 걷기이다.

2008년과 2009년 성곽을 종주하고 종주를 안 해 보셨다는 머핀님과 2009년 다른 사람들돠 종주하고 심심하면 밥 먹듯이 혼자 성곽 종주를 일삼는 나, 이렇게 둘이서 다정하게 성곽 걷기에 나선다.

숭례문에서 숭례문으로, 점심 시간(약 1시간 30분) 포함하여 8시간에 걸쳐 23km를 걸었다.(9월 15일 토요일

머핀님 걷기 봉사로 조금 늦은 9시에 2호선 시청역 7번 출구에서 만나 5시 시청역에서 헤어졌으니, 어제와 오늘 약 40km를 걸었다.

  숭례문에서 남산으로 오르는 길, 모처럼 공사가 다 끝난 공원을 따라 김구선생님도 뵙고, 남산터널 위 생태 육교처럼 난 길을 따라 가니 안중근선생이 우리를 기다린다.

공사가 끝나기 전에는 남산 순환도로를 따라 걷다가, 끝없는 계단을 따라 올라야 했는데, 처음부터 공사가 끝난 길과 만나서 반갑고 고맙다.

남산 타워를 바라보는 화단에는 온갖 일년생 꽃들이 흐드러진다.

물론 내가 아는 꽃 이름은 맨드라미, 백일홍, 강아지꽃(족두리꽃), 채송화 정도지만  가을을 예감하는 부드럽고 온화한 햇볕 속의 가을 꽃은 마냥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편안하게 남산에 올라, 남산 한옥마을로 길을 잡고, 국립극장에서 길을 건너 반얀트리 서울 스파 앤 클럽과 신라 호텔 뒷길을 따라 성곽 안으로 걷는다.

장충 체육관 쪽 도로에서 신호를 건너 한 블록을 가면 광희문, 동대문 운동장을 지나 동대문 바라보고 , 낙산으로 접어든다.

멀리 북한산의 연봉이 바라 보이고, 부드러운 성곽이 길게 이어지는 낙산 공원 부근을 서울 성곽 가운데 나는 제일 좋아한다.

새파란 가을 하늘 아래 상서로운 흰빛 바위 백운대가 바라 보이고, 아직 여름의 열정을 지닌 녹음이 지치지 않는 북한산의 연봉이 눈과 마음에 다가오고, 부드러운 호를 그리며 성곽은 물결치듯 흘러 가고, 성곽에는 연두빛과 진한 초록빛 담쟁이가 오르고, 또 한편 성곽에는 철이른 감국이 연약한 노란빛을 빛내기 시작한다.

혜화문을 바라보며 어쩔 수 없이 한성대입구 지하도로 길을 건너 한 블록을 가면 서울과학고등학교에서 와룡공원으로 접어든다.

와룡공원에서 바라보는 북한산은 이제 손에 잡힐 듯 다가오고, 말바위 휴게소에서 탐방 표찰을 받고, 숙정문을 지나 인왕을 바라보며 성곽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 계단을 아래로 아래로 내려온다.

앞에는 인왕산이, 오름쪽에는 북한산이, 왼쪽에는 두고온 남산이 펼쳐지고, 앞이 텅 빈 푸른 하늘을 향해 걷는 착각에 빠지면서 나는 그지없이 행복하다.

드디어 자하문이라는 창의문을 찍고, 치맥으로 점심을 먹고 또 먹었다.

무려 1시간 30분 정도 점심을 했으니, 우리도 대단한 대식가이다.

기다리는 시간이 약간 길었다면 변명이 될까?

머핀님 말대로 바싹 튀긴 치킨도 좋았지만, 큼직하게 직접 잘라 튀긴 감자가 너무 행복했다.

윤동주 언덕을 지나 인왕산으로, 치맥으로 업업된 우리는 지치지도 않고 단숨에 인왕산을 정상을 찍고, 성곽을 따라 하산하여, 서대문터를 향하여 걷는다.

근대문화 유적인 홍남파 선생 댁을 지나 강북 삼성병원의 경교장을 일별하고, 돈의문인 서대문터를 바라보고, 신호를 건너 정동길을 걷는다.

20세기 초엽의 분위기를 간직한 아련한 정동길을 지나 이화와 배재학당 기념관과 대사관을 거쳐, 신호를 건너 중앙일보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이제 흔적만이 남아 있는 성곽을 축대 형태로 보존한 길을 거쳐 숭례문에 도착한다. 

  걷는 시간은 6시간 30분이었으니 7월에 혼자 걸었던 6시간에 절대로 뒤지지 않는 도보 기행이었다.

물론 혼자 걸을 때는 제대로 먹지도 않고 쉬지도 않았으니, 걷기가 아닌 극기 훈련이라고 할 수밖에.

어제와 오늘 연이어 머핀님과 발을 함게 맞추며 걸었던 이 길이 지금처럼 그대로 이어지기를 소망하고 또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