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2월 30일 성내천을 통과하여 돌아오다가 아산 중앙병원 근처에 놓여진 토끼 두 마리를 보았다. 천진하게 아직 시들지 않고 남아 있는 풀을 찾아 뜯어 먹고 있는 모습이 너무 마음에 걸렸다. 내 걱정을 들은 진경이는 토끼가 굴을 파고 들어가서 이 겨울을 잘 지낼 거라며 걱정 말라고 했다. 학생들은 토끼가 굴 속에서 겨울잠을 잘 거라며 엉터리 과학 상식으로 나를 안심 시켰다. 눈 내리고 바람 부는 날이면 가끔씩 그 토끼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그 토끼 가운데 한 마리를 만났다. 눈 근처에 안경을 낀 것처럼 검은 무늬가 있는 그 녀석이었다. 겨울을 살아낸 그 녀석은 천연덕스럼게 여전히 풀을 뜯어 먹고 있었다. 한 마리는 보이지 않았다. 이 겨울을 이겨낸 그 녀석이 너무 고마워 자꾸 돌아다 보았다.
우리 집 토끼가 계속 그 지난한 길을 향해 가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남편이 최대한의 인내심을 가지고 녀석을 설득하는데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힌 아들 아이는 그 생각의 감옥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는다. 떨어져 사는 이 년 동안 녀석도 해자를 깊이 판 자신의 성을 굳건하게 지닌 성주가 되어 있었다. 설득되지 않는 녀석을 미워하다가 내 자신의 유치함에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이런 결과를 가져온 녀석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을 다잡으려고 나선 길에 토끼를 보았다. 나의 걱정이 기우임을 보여주며 이 겨울을 잘 살아낸 토끼처럼, 우리 집 토끼 녀석도 남편과 나의 생각이 기우였음을 증명해 낼까! 녀석을 믿어 주고 싶은데, 녀석의 결정을 밀어 주고 싶은데, 자꾸만 머뭇거리며 망설이고 있다. 녀석의 인생을 단지 부모라는 이유로 내가 제단할 권리가 있을까. 녀석의 인생이라는 이유로 부모의 의무를 망각하고 속수무책 녀석의 결정에 따라야만 할까.
아들의 합격을 기원하고 기도하며 초코렛을 보내고 문자를 보내고... 간절한 소망으로 가슴까지 멍이 드신 여러 주변 분들께 고마움을 보낸다. 모든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데 아직 때가 아닌가 보다. 그 분들의 마음에 나는 빚을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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