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은 변한다.
강은 강으로 흐르고, 산은 산으로 이어지며, 길은 또 다른 길로 이어지고, 시간은 또 다른 시간으로 흐른다.
그 시간을 따라, 그 길을 따라, 우리는 흘러 가고 흘러 오며 그리고 변해 간다.
지난 해 여름 남편과 세 번에 걸쳐 둘레길을 걷고, 8월 초순 한여름 우리 땅 여러분들과 이틀에 걸쳐 걸었고, 여름이 끝날 무렵 황선생님과 또 이 길을 걸었다.
그리고 해가 바뀐 오늘 한겨울 눈길을 걷는다.
연산군 묘역 앞에 있는 몇 백년 묵은 방학동 은행나무는 그 푸른 잎을 떨군 채로 의연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우리는 그 날 그 자리에서 얼마나 많이 흘러 왔는가?
우리가 모여 점심을 먹었던 그 계곡은 하얀 얼음이 꽁꽁 언 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함께 큰언니가 쑤어 오신 묵을 나누었던 우리는 얼마나 많이 흘러 왔는가?
그 때 함께 나누었던 그 유쾌한 대화와 끝없는 웃음은 어디서 맴돌고 있을까.
수량이 풍부하지 못한 계곡에 입수하며 즐거워 했던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 때 그 마음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 걸어 오늘 여기에 왔는가.
그 마음의 여정을 헤아려 본다.
레빗 홀이 있다면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그 구멍으로 들어가 그 날 그들을 만나고 싶다.
그 여름 이후 나는 얼마나 달라졌으며, 나는 또 얼마나 그 곳으로부터 흘러 왔는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득하다.
내가 걸어 가야할 길, 내가 걸어 가야만 할 길은 어떤 모습으로 내 앞에 펼쳐질까.
지나온 길에 대한 회한이 없다면 다가올 길에 대한 기대도 없을까?
지난 길에 대한 회한의 무게만큼 다가올 길에 대한 막막함으로 가슴이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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