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마지막 날
내일이면 다시 서울로 돌아가기 위한 여로에 오른다.
서울, 암스테르담,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그라나다, 코르도바, 말라가, 카사블랑카, 탕헤르, 세비야, 그리고 리스본.
여행이란 돌아가기 위한 것임을 아프게 깨닫는다.
두고 온 것들에게 돌아가기 위하여 나는 그 먼 거리를 돌고 또 돌았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 호미곶에서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 까보 다 로카까지.
거리를 두고 싶어서 떠나 왔는데, 나 이제 그들에게 돌아간다.
어디에서나 시간은 막무가내로 등을 밀어대고, 수많은 시행착오가 이어져도 되돌아가 수정할 길이 없음을.
무작정 걸으면서, 때론 무릎을 기꺼이 굽혀 벌레처럼 기어서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함을.
아마리게 로드리게스의 음성으로 '기차는 8시에 떠나네'가 흘러 나온다.
함께 나눈 시간들은 밀물처럼 멀어지고
이제는 밤이 되어도 당신은 오지못하리
당신은 오지 못하리
비밀을 품은 당신은 영원히 오지 못하리
'비밀을 품은 당신은 영원히 오지 못하리', 이 구절은 늘 내 마음을 저리게 한다.
그리고 일산에서 강변에 있는 집까지 오면서 느꼈던 그 절절함은 지금도 유효하다.
돌아오지 못한 당신보다 돌아가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굴욕과 배신과 분노로 점철된 삶이지만 그 시간을 견뎌내며 살아낸 나는 운명에 투항하여 투신한 당신보다 얼마나 자랑스런 사람인가?
나 이제 돌아가 살아 내리라.
그리고 견뎌서 내 삶에서 승리하리라.
'영광도 아름다움도 평화로움도 모든 것이 승리자의 것이다. 그러니까 승리해야 한다.'
이것은 너무나 분명해서 진부하나 잔인한 진리이다.
아름다움과 평화로움, 그리고 영광을 보장받을 만큼은 내 삶에서 승리하고 싶다.
삶에 대한 대단한 기대도 꿈도 버린지 이미 오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삶의 평화로움을 지킬 만큼은 나도 내 삶에서 승리하고 싶다.
이것이 내가 지금 여기에서 꾸는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