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또 걷기

예봉산

꿈꾸는 식물 2009. 1. 4. 20:50

  검단산에 갈 때마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예봉산이 궁금했다.  한강을 사이로 때때로 검단산 그림자가 고스란히 비치는 예봉산에 토요일 남편과 올랐다.  우왕좌왕 하다가 조개울에서 오르기 시작했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팔당역에서 시작하여 천주교 묘지 쪽으로 내려와  시내버스를 이용해 차를 둔 팔당역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예봉산과 예빈산이 더불어 이어지면서 견우봉과 직녀봉 승원봉의 봉우리들이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겨울 나무들 속에서 조용히 시간을 견뎌내고 있었다. '솔밭 사이로 강물은 흐른다'는 노래의 구절처럼 모든 것을 놓아버린 겨울 나무 사이로 기적처럼 반짝이는 한강을 보았다.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홀로 싹을 티우고 잎을 키우고 꽃을 피우다가 열매 맺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순리의 엄숙함에 숙연해진다.  나는 얼마나 엄살을 피우고 어리광을 부리며 살아 왔는가?  아니 지금도 살고 있는가?

 

  다산 정약용의 고향이어 정약용의 한시가 많이 번역되어 소개되어 있었다.  19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다가 풀티재를 넘어 또 다른 곳으로 귀양가며 본 일출산의 모습이 고향에서 본 도봉산과 너무 닮아 머리를 숙인 채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는 시를 남긴 다산 정약용 선생을 생각한다.  아내가 보낸 낡은 치마에 아들을 위해 당부의 글을 적어보낸 다산 선생의 마음을 느껴본다.

 

  하산길 천주교 묘지에서 수묵화 같은 담담한 색채의 죽음을 느껴본다.  동양화 같은 관조의 죽음의 모습은 생의 연장처럼 느껴졌다. 물론 생의 이면이 죽음이겠지만,  죽음은 생의 단절로만 느껴져 죽음은 늘 먹먹하게 다가온다.  하산길에 마주한 천주교 묘지처럼 삶의 어느 모퉁이에서 문득 마주할 죽음이 이 삶의 연장이라 생각되는 날이다.

 

  나뭇잎이 떨어지는 계절이면, 떨어진 나뭇잎을 밟는 계절이면 늘 월명사의 '제망매가'를 마음 속으로 읊조린다. 월명사의 이 향가는 나의 업(業)이다.

 

제망매가(祭亡妹歌)

월명사

생사(生死)의 길은

예 있으매 머뭇거리고,

나는 간다는 말도

못다 이르고 어찌 갑니까.

어느 가을 때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질 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온저

아아, 미타찰에서    만날 나

도(道) 닦아 기다리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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