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시험 때부터 기출 문제를 모아 예상 문제집을 만들었다. 이름하여 '여유만만' 문제집. 문제를 만드는 나도 문제를 풀어야 하는 녀석들도 전혀 여유 없이 늘 허둥대지만 이름은 그래도 '여유만만'이다. 시험 때마다 미리 만들어 인간답게 살겠노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지만 언제나 벼락치기로 며칠 밤을 꼬박 하얗게 새어야만 한다.
이번 시험은 일찍 시작을 하였는데도 일 처리 능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힘이 들었다. 똑같은 일을 십 년 넘게 하는데도 얼마나 많이 헤매고 실수를 했는지 모른다. 울고 싶을 만큼 힘이 들게 만든 책인데 녀석들은 4000원 원가에 가져 가면서 잔소리를 한다. 3700원 에서 3850원이 제본점에 내가 내는 가격인데...... 애써 무시하려는데 마음이 유쾌하지 않다.
신정일 선생님의 '꿈속에서도 걷고 싶은 길' 이야기를 하니 학생 가운데 한 녀석이 나에게 책을 써보라고 한다. '여유만만' 문제집 쓰기도 힘든데 책은 물건너 갔다고 대답했다. 내 대답에서 눈물기를 읽어 버린 아이들의 위로가 힘이 되는 날이다. 자기네들이 샘에게 잘못을 한 것만 같다는...... 그러나 어떤 다른 책보다 '여유만만'이 소중한 책이라는......
아직도 나는 내 감정 조절과 표현에 미숙하다. 동물적인 진지함으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고 싶은 쉰을 넘긴 내 마음을 그 누가 알겠는가? 오타와 헛손질로 피같은 시간을 흘러 보내는, 눈까지 침침하여 읽어내기도 힘든 하드웨어의 무기력에도 불구하고 정신은 늙고 싶지 않은 이 마음을 그대는 아실지! 이고 진 정철의 늙은이처럼 나도 늙기도 서러운데 이고 지고 이 삶을 견디며 가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석굴암 대불 (0) | 2010.08.05 |
---|---|
접시꽃 당신 (0) | 2010.07.08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0) | 2010.06.23 |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 (0) | 2009.01.11 |
오래된 일기 (0) | 2009.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