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동백꽃 핀 날

꿈꾸는 식물 2009. 12. 7. 17:59

  드디어 동백꽃이 피었다.

봄부터 아파트 밖에 내려 놓았기 때문인지 올해는 수고스럽게 서른 개 남짓 꽃봉오리를 매달고 있다.

 

  옛날도 아주 먼 옛날 호랑이 담배 피운던 시절, 전주 시청 뒷뜰에 피어 있는 예쁜 동백을 엄마가 보셨더란다.

선명한 붉은 꽃잎, 소담스런 노란 꽃술이 엄마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빠의 끝없는 나무람 때문에 엄마는 한 가지 꺾어 심고 싶은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막내 아들인 훈이가 그 가지를 꺾어 주어, 그렇게 그 동백은 우리 집에 왔다.

마이더스의 손이 아닌 생명의 손을 가진 엄마는 그 가지를 심고 가꾸어, 진북동 친정 정원 앞쪽에서 가장 아름답게 해마다 피었다가 진다.

엄마 혼자만  보셨으면 좋았을 그 동백을 엄마는 화분에 심어 내게 보내셨다.

엄마는 정원이기 때문에 봄에 보는 동백꽃을, 나는 겨울 초입에 보아야만 한다.

나를 잊지 말라는 듯, 올해는 드디어 훈이 녀석의 생일에 동백꽃이 피고 말았다.  

녀석이 우리 곁을 떠난 지 이미 육 년이 지났다.

해마다 해마다 동백꽃은 피었다가 진다.

 

  묏버들 골라 꺾어 보내노라, 임에게

  주무시는 창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 잎 나거든 나처럼 여기소서.

 

 

 

 

 

 

  우리 형제 가운데 제일 늦게 왔다가 제일 빨리 우리 곁을 떠나버린 내 동생 훈이.

해마다 동백꽃이 필 때면 "동백꽃이 피는구나"는 한 마디에 깃든 내 아픈 마음을 그 녀석은 알까.

뚝 뚝 떨어진 그 꽃을 차마 버리지 못해 조그만 그릇에 담아 놓은 내 마음의 풍경을 그 녀석은 알까.

12월 겨울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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