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레에서 하루를 보내고 고라파니까지 본격적인 트레킹이다.
고라파니는 네팔어로 '말의 물'이라는 뜻이란다.
인디언들의 언어처럼 네팔어에서도 많은 비유와 상징이 있는 듯 느껴진다.
오전에 세 시간 트레킹, 오후에 세 시간 트레킹을 하면서 점점 안나 푸르나와 다울라기리를 향하여 나아간다.
아무 생각없이 멍 때리고 걷다 보면 눈 앞에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는 설산의 연봉들, 생각을 내려 놓는다는 생각도 없이 걷다가 무심코 뒤를 돌아다 보면 그 모습 그대로 나를 따라온 만년설의 연봉들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조금 걷다 보면 롯지가 나오고,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며 바라보는 설산과 눈이 시리도록 푸르른 하늘, 봄을 향하여 가는 듯 노랗게 피어나는 이름도 모를 그 많은 야생화 무리, 우리 나라 감자의 절반 정도 되는 작은 감자, 다년생이 되어버린 토마토 나무와 사루비아 나무.
다랭이 논의 원조를 보여 주는듯 끝없이 이어지는 다랭이 밭, 이제 막 피어 나기 시작한 노오란 유채꽃, 멀리 가까이 보이는 밭에는 파릇파릇 피어나는 연두빛 봄의 예감, 양쪽에 짐을 실고 딸랑딸랑 워낭 소리를 내며 트레킹하는 나귀의 행렬, 여러 마리씩 무리 지어 길을 떠나는 씩씩한 말의 행진.
고라파니에서 마주한 안나 푸르나의 모습은 감동의 쓰나미, 감동의 도가니, 환희 그 자체였다.
구름에 싸였던 히말라야의 연봉이 구름을 벗고 조금씩 모습을 드러 낸다.
놀랍게도 내 눈 압페 펼쳐지는 설산의 파노라마.
파아란 하늘과 하이얀 설산, 시리도록 투명한 공기, 가끔씩 연기처럼 피어나는 눈보라, 잠깐 시선을 다른 곳에 두었다가 돌리면 줄줄이 알사탕처럼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는 설산, '저도 산이에요'라며 또 줄줄이 비엔나인 듯 다시 모양을 바꾸는 설산의 연봉.
숙소에서 창문을 통하여 바라보는 안나 푸르나의 석양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푸른빛이 보랏빛으로 붉은빛으로 모습을 바꾸는 아름다운 저녁, 그 황혼을 영원히 잊을 수 없으리라.
이웃집에서 결혼식을 축하하는 네팔 특유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붉은빛 설산은 점점 어둠에 잠기고, 별은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낸다.
삶은 아름다울 것이라고 믿고 싶다.
아니 삶이 아름다울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삶의 그 비밀스런 의미를 잠깐 일별한 듯,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신의 얼굴을 잠깐 알현한 듯!
가슴이 아프도록 뛰었다.
마음이, 마음이......
'네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나 푸르나 트레킹(3) (0) | 2013.02.22 |
---|---|
안나 푸르나 트레킹(1) (0) | 2013.0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