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것들

작가 박완서씨를 떠나 보내며

꿈꾸는 식물 2011. 1. 23. 23:12

  토요일 아버지 팔순을 위해 전주로 향하는 고속도로에서 동생에게 박완서씨의 영면 소식을 들었다. 

언니에게 박완서씨의 암 투병 소식을 들었지만 강한 분이기에 잘 극복해 내리라 생각했는데, 그 믿음은 부음으로 돌아왔다.

 

  '나목'부터 시작된 박완서씨에 대한 내 마음은 문학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에 다름 아니었다.

문학사상에 연재된 '도시의 흉년'에 빠져 문학사상이 월간지라는 것이 화가 날 정도로 다음 달을 기다리기 힘들었디.

박완서씨의 소설집이 나오면 부지런히 놓치지 않고 사보고, 홍지서림에서 새 소설집을 발견하면 커다란 보물을 찾은 듯이 기뻐 어쩔 줄 몰랐던 대학 시절.

'나목'을 읽으며 박수근 화백의 그림을 보고 싶어 궁금해 하던, '도둑 맞은 가난'을 '가난 맞은 도둑'이라 잘못 말하고 낄낄대던 동생과 나의 젊은 날을 샛별같이 지켜 주던 여러 작품들이 스쳐 간다.    

박완서씨의 이야기꾼에 이청준씨의 문체를 담고 싶어 했던 나를 남겨 두고 두 거인은 이 세상을 떠났다.

 

  오빠에 대한 끝없는 자랑스러움과 사랑, 그래서 오빠를 잃은 마음을 평생 벗어날 수 없었다는 '엄마의 말뚝'.

6.25의 상처가 오빠에 대한 깊은 사랑 때문이었다는 작가의 이야기를 온 몸으로 공감했다.

사랑이 깊으면 상처도 깊다.

 

  '한 말씀만 하소서'는 박완서씨와 똑같은 아픔을 겪은 우리 엄마에게 얼마나 위로와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동생을 황망히 떠나 보내고 그 '참척의 일기'를 읽으며 나는 얼마나 통곡하고 또 통곡했는지... 

박완서씨가 슬픔 극한까지 갔다가 다시 딛고 일어나 모국어를 만지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우리 엄마 역시 우리 때문이라도 잘 견뎌 내시리라 믿을 수 있었다.  

 

   1931년 10월 20일 ~ 2011년 1월 22일  양띠, 천칭자리

박완서씨의 생몰 연대이다.

우리 아빠와 생년이 같아 같은 양띠이고, 나와 생일이 같아 천칭 자리이다.

마음이 먹먹하다.

 

  같은 시대에 함께 할 수 있어 너무 고맙고 행복했습니다.

저희는 모두 작가 박완서님께 커다란 마음의 빚을 졌습니다.

이제 한번 가면 너무 좋아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그 곳에서,  꿈에도 그리운 아드님과 남편, 그리고 오빠와 어머니 만나시길  바라고 바랍니다.

 

  하얀 눈 꽃상여로  박완서님의 영혼을 하늘 나라로 모셔 가려는 듯 오늘 하얀 눈이 내렸습니다.

고맙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이제 편안히 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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